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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사문화가 낳은 중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
[중앙포토] 요즘 중국에서 각종 업무를 처리할 때 ‘판공실(辦公室)’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별로 없다. 우리식으로 직접 풀면 ‘사무실’이다.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 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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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Saturday] “소금 땅서 태어난 관우 모셔야 돈 번다” … 재물신으로 추앙
‘세계에서 가장 오랜 독점’이 중국 정부의 소금 전매다. 공산당은 최근 이를 폐지했다. 큰 땅, 많은 인구의 중국이 역사 속에서 소금을 두고 빚은 풍경은 아주 여럿이다. 풍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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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백가쟁명:강성현] 환관(宦官)과 ‘내시성’의 의미
“대통령님, 더 이상 이러시면 안 됩니다(조선일보, 2014, 7.1)”라는 제하의 김대중 칼럼을 읽었다. 개그 콘서트에서 퍼뜨린, “손님,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.”를 풍자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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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이영아 여론 女論] 떠나 온 ‘동포’들
이영아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01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소설가 최서해(崔曙海)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1918년부터 5년간 간도로 이주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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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립·자유 향한 서재필의 꿈 태평양 건너 한반도에 퍼지다
"중앙선데이,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" 서재필기념관 1층 내부. 서재필 박사 유품반환추진위원회는 앞으로 ‘생활용품 전시관’과 계몽·독립운동 자료들을 별도로 전시할 계획이다. 인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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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립·자유 향한 서재필의 꿈 태평양 건너 한반도에 퍼지다
서재필기념관 1층 내부. 서재필 박사 유품반환추진위원회는 앞으로 ‘생활용품 전시관’과 계몽·독립운동 자료들을 별도로 전시할 계획이다. 인디펜던스홀.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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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니하오! 중국] 8. 상도의 고장 안후이성
중원(中原)의 땅에서 양쯔(揚子)강 이남으로 움직이는 길목에 안후이(安徽)성이 자리잡고 있다. '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로 변한다'는 말이 있다. 이 말이 의미하듯 안후이성을 흐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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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니하오! 중국] 8. 상도의 고장 안후이성
중원(中原)의 땅에서 양쯔(揚子)강 이남으로 움직이는 길목에 안후이(安徽)성이 자리잡고 있다. '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로 변한다'는 말이 있다. 이 말이 의미하듯 안후이성을 흐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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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양화걸작 한눈에 본다」
렘브란트·루벤스·반 다이크·무릴료·푸생·코로···. 그동안 연집을 통해서나 볼수 있었던 서양미술의 기라성 같은 거장들의 실제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수 있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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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64)시 승격 10년…서해안 시대 맞이 분주|정주시
내장산 단풍 관광의 정주시는 현존 유일의 백제 가요인『정읍사』를 낳은 전통 문화가 숨쉬는 예술의 고장이다. 「??하 노피곰 도??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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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117)진씨(글 사진 김창욱기자)
진씨는 「풍기」와 「진주」를 각각 본관으로 하는 두파가 주류를 이룬다. 이밖에 「삼척」 「영춘」 「용인」 「평강」 「남원」 본관의 소파도 있다. 그러나 우리나라 진씨의 90%는 풍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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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씨의 고향의흥 예씨
의흥예씨의 시조는 고려 인종(1123∼1146) 때 문하찬성사를 지낸 예낙전-. 문장과 덕망이 빼어나 김부식·이인로·이규보등 당대의 명유들과 어깨를겨루었던 석학이었다. 경북군위군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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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98) 광주 남원 충주양씨
양씨의 시조는 탐나개국설화의 3신인중 한사람인 양을나다. 「제주삼성」의 시조인 삼신인. 그중에도 양대성인 양씨와 고씨집안은 예부터 「삼신인의 서열」을 놓고 서로가「맏집」 이라고 엇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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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0)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-의열단(6)
김야산의 항일운동과 함께 의열단의 활동중 특이한 것은 전중의일육군대장 저격사건이후의 오성륜의 행적이다. 오성륜의 행적은 그가 엄격한 테러리스트로 모든 행동이 비밀리에 이뤄졌기때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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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씨
충남서천에서 3km남짓, 황해의 바닷바람에 출렁이는 초록빛 들판을 가로질러 한산쪽으로 달리노라면 금계산기슭 아늑한 분지에1백10여호 노씨문중이 처마를 맞대고 모였다 3백여년동안 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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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·조선조를 빛낸 충절가 임경업장군 기개엔 청대종도 감복
임씨는 우리나라 10대 성중의 하나. 인구는 약1백만명으로 추산된다. 이중 평택 임씨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70%. 임씨의 득성에 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. 첫째는 『중국 요임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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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사편찬위가 분석한 교과서 왜곡문제
◇한군현의 위치 ▲조선우도에도 농경과 금속기의 문화가 발달하고 한은 그곳에 낙랑군등의 사군을 두고 지배하었다.(동경서적 일본사 P15) ▲또 조선우도에서는 2세기 후반에 한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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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1)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
우리는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. 때로는 강물처럼 도도하게, 때로는 침체된, 그런 역사였다. 민족의 혈맥이 뛰는「의지」의 장도 있었고, 어두운「터널」같은「우울」의 장도 있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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「근대화의 여명」 연재를 마치고-유홍열
나는 중앙일보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3월부터 「조국 근대화의 여명」이라는 변변치 않은 글을 51회에 걸쳐 동 지상에 연재하여 왔다. 이 글에서는 이조 중엽인 16세기말부터 그 말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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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51) 서재필(하) - 류홍열
그는 여기에 만족치 않고 이완용 이상재 윤치호 등 30여명의 인사들을 규합하여 독립협회를 만들어 스스로 고문이 되었다. 또한 중국사신을 맞아들이던 영은문과 막화관 자리에는 독립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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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50) 서재필(상) - 유홍렬
서재필(1866∼1951)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권옹호를 위하여 분투한 한말의 위대한 지도자였다. 그는 1866년 11월 28일에 전라도 동복군 하천리(지금의 보성군 문덕면 하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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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9) 오경석 - 유홍렬
오경석은 1831년 1월 21일에 서울 중부 시궁골(지금의 장교동)에서 지중추부사 오경현의 장자로 태어났다. 그의 집안은 중인으로서 대대로 역관을 지내왔으며 그도 역시 중국어 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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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8) 전봉준(하) - 유홍열
1894년7월23일 일본공사 대조규개는 우세한 일본군을 이끌고 서울에 돌입하여 단독으로 내정개혁을 단행(갑오경장)하였다. 이로 말미암아 청일 양국은 교전상태에 들어가 소위 청·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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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7) 전봉준 (상) - 유홍렬
전봉준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. 그는 1854년 전라도 고부군 궁동면 양수리(지금의 전북 정읍군 이평면 장내리)에서 향리(평민?)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났다